유전遺傳

박산 2016. 9. 12. 10:41





유전遺傳 -


관악산 산행이 하루의 첫 일과였던 늘그막 아버지

친구로부터 걸려온 따르릉! 첫새벽 모닝콜

서울대 입구 어디서 만나고

오늘 누가 온다 했고 아침은 어디서 먹고

찻집은 어디로 가고……


통화 중에 간간히 들리는 목 칼칼한 아버지 웃음소리

등산복 약수통 배낭 챙기는 분주한 어머니 치맛단 소리


대청마루 서까래에 붙어 있던 고요가

시나브로 쪽마루 타고 쫓겨나 건넌방 거쳐

아랫방 문풍지를 붕붕 뚫더니

끝방에서 곤히 자고 있는 내 이불깃에 들어 부서졌다


아버지 소풍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시 씁네!’ 하는 그럴듯한 명제로 새벽 맞는 나는

시 몇 줄 긁적여 새벽잠 사라진 벗들과 문자질이고

오늘은 무얼 하고 누굴 만나고 무얼 먹을지

아버지 보다 더 많은 새벽 수다를 떨고 있지만

대청마루 서까래도 쪽마루도 문풍지도 없는

콘크리트 아파트 속에서는 깨질 고요조차 없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흠모 111+76  (0) 2016.09.23
밑천  (0) 2016.09.19
못생긴 한국 남자 -  (0) 2016.09.05
알겠다  (0) 2016.08.29
진흠모 111+75  (0) 2016.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