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호 사진작가 2

혼술 소묘

혼술 소묘 ㅡ 종종 단골 해장국집 가는 시간은 일부러 손님 뜸한 아침 11시 전후다 대다수가 나 같은 혼밥이라 편하다 한 쉰 먹었을 얼룩얼룩한 작업복 차림의 사내가 세상 고민 혼자 다 뒤집어 쓴 표정으로 터덜터덜 들어와 앞 테이블 의자에 털썩 앉자마자 "아줌마, 후레쉬 한 병에 내장탕!" 김치 깍두기가 밑반찬으로 놓이기 무섭게 물컵에 콸콸 소주를 따라 바로 목을 넘긴다 한눈에 보아도 세상에 목이 바짝 마른 생명이다 정작 내장탕은 나오기도 전에 이미 소주병은 싹 비워졌다 또 한 병의 소주병 목을 거칠게 비튼다 아침, 해장국집, 혼술, 혼밥, 두꺼비 문득 지금 이 장면이 아련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1986년 겨울 아침 청진동 해장국집에서 내가 그랬으니까... (2021년 겨울 아침)

2021.12.19

상생

「상생」 두 발로 걷는 사람이 우주의 시간을 한 발로 걷어찼다 땅 딛고 선 남은 한 발이 머뭇거리다가 생각을 불러왔다 생각이 부풀기 시작했다 빨갛고 파랗고 노랗고 불뚝불뚝 크고 작고 혼을 부르는 샤먼의 북소리로 다시 모아진 두 발이 전에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만치 엎어졌던 시간이 가만가만 다가와 두 발을 감쌌다 뿌리가 있다 무형의 잔뿌리가 얼키설키 뭉쳐 있다 각각의 생각으로 꿈틀대며 뭐라 말하는 불로도 결코 태워지지 않는 것들이 미워해야 했던 건 언제나 공평했던 시간이 아니라 순간순간 성급했던 발길질이었다 아니라 해도 그건 오만이었다 두 발을 주무르고 있는 중이다

2021.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