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마시는 술맛이 혀에 더 붙는다

박산 2025. 12. 12. 09:05

와이너리 보트(포루투 도우루 江변 박산 찍음)

 

바보가 마시는 술맛이 혀에 더 붙는다 -

온더락 위스키 한 모금에
얼음 두 덩이 혀로 굴리며
켄트 한 개비 꼬나물고는
입술 붉고 가슴골 깊은
금발 여인을 음흉스레 훑으면서
과장된 제스처로 뱉어냈던
이국의 어설픈 언어들에 엉킨 신음과
흥분을 애써 감춘 스릴
위스키 오르가즘
세월이 가르쳐준 느림의 미학은
뇌가 쉬엄쉬엄 회전하여 바보를 만들더니
옛적 얘기를 다 잊게 했다
여인을 잊은 지는 오래지만
간원하여 마실 술도 딱히 없다
이실직고하자면
없다 없다 하다가도
간혹 아주 간혹은
술맛 당기는 바보 스스로가
잔을 콸콸 채우거나
주법을 아직 기억하는 바보의 벗이
졸졸 잔을 채워 주거나….
톡톡 쏘는 변모한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켜면서
파전에 빈대떡 같은
과거를 안주 삼아 우적우적
현재의 생명이 몸짓 중이다
넥타이 풀고 양복 벗은 지 오랜 바보는
쌀로 빚는 막걸리 공정도
스마트팜 모듈 IT 시스템인 줄은
꿈에도 모른다
위스키와 켄트의 행방을 모르듯이….
그래야
바보가 마시는 술맛이 혀에 더 붙는다 

 

* 시집 《가엾은 영감태기》 중 

 

아침 9시, 오사카 지하도를 걷다가 붐비는 술 손님들 보고 들어가, 사께 한 잔 시켰는데, 담배 연기에 질려 잔을 비우고 바로 나왔다
愛酒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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