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ㅡ
30여 년 전 일본 도쿄 출장 시
긴자 근방 호텔에서
오전 미팅 장소인 M 종합상사를 찾아가다가
출근 시간 복잡한 빌딩 숲에서 길을 잃어
길 가는 20대 여성에게
담당자 명함에 적힌 주소를 보여주며 길을 물었는데
영어 소통이 안 됐었는지
내 소매를 살짝 잡아끌면서 몇 블록을 지나
M 종합상사 건물 출입구까지 데려다주고는
당연히 할 일을 했다는 표정으로
오던 길로 돌아갔다
혼토니 아리가또 고자이마시다(本当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그로부터 강산이 세 번 바뀌었다
비 맞고 눈 맞으며 햇볕에 마르길 반복하여
궂은일 모두 지켜보았던
내 정수리 머리칼들이 시나브로 사라진 바람 센 늦가을 어느 날
덥지도 춥지도 않을 이맘때 섬나라 대만이 떠올라
타이베이로 떠났다
타이베이역에서 시내버스로
시립미술관 정류장에 내려
200년 전 성공한 상인 '린안타이(林安泰) 고택'을
구글맵을 켜고 따라가다가
교차로 지나 한적한 뒷골목 접어들어 방향을 잃었다
마침 운동 중인 영감님을 만나 물어보니 어찌어찌 길을 알려준다
알려준대로 가다 보니 고가도로 아래 세 갈래 길이 또 헷갈린다
앞서가던 일행이 길 가던 간편 차림 50대 여성에게 물으니
소매를 살며시 잡고는 왼쪽 신호등 건너 공원을 끼고 빠르게 걸어
고택 바로 앞까지 안내를 해 주고는
역시 당연하다는 듯이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데
내 뒤로는 아까 그 영감님께서 잰걸음으로 쫓아와
나를 고택 앞까지 안내하고는 역시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타이깐씨에러(太感謝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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