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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장돌뱅이였다면 -

박산 2018. 5. 13. 16:04


                                     신안 증도 대초리 삘기밭(getting photo from 김병모)


떠돌이 장돌뱅이였다면 - 


아랫목 따스함이야 잊고 살겠지만 

떠돌이 막 살아가는 그 인생도 

사철 구릿빛 살갗 태우고 

씨팔조팔 입으로야 늘 상 투덜거리겠지만 

그 또한 살아볼만 하지 않을지 


장가들 생각이야 하지 말아야지 

새끼 키울 생각이야 접어야지 


떠돌다 배 맞춘 맘씨 좋은 여자 

얼굴 좀 못생기면 어떤가 

젖꽃판 내 혀 녹이면 극락이지 

하룻밤 풋사랑 아쉬운 이별일지라도 

또 다른 여자 

또 한 인연으로 다가오겠지 


밥이라야 기껏 내 한 입 채우기 

장바닥 널린 게 국밥인데 

그거야 뭐 그리 어렵겠나 


홀로 살아 

늙어져도 사나운 팔자 

술 한 잔에 탄식하고 

끙끙 짧게 앓다 소풍 끝낼지라도 

아등바등 길게 살려고  

아랫목 앉아 불로초 찾는 팔자 부러울까 


겪은 설움보단 

누린 자유가 꿈만 같지만 

뼛속 파고드는 어쩔 수 없는 지독한 고독 

자위自慰로 감사하고 찬양하다가 

껌 씹듯 질겅질겅 들러붙는 

집요한 죽음의 그림자 

나만 오라는 것 아니니 

웃으며 마중 나가야지

 

내가 말이다 

떠돌이 장돌뱅이였다면 



 (박산 시집 '구박받는 삼식이' 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