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전화를 했다

박산 2016. 1. 9. 08:03

     

     

    '눈' draw by 벗, 홍기탁

     

     

    그가 전화를 했다 -

     

     

    함박눈 내리는 날

     

    그가 전화를 했다

     

    약간은 탁하지만 익숙한 음성으로

     

    여기 오대산이야

     

     

    쪽 뻗은 느릅나무 숲

     

    툭툭 몇 뭉치 눈이 떨어졌다

     

    작은 움직거림 새들

     

    은은한 동종 소리

     

    시린 귀를 덮는 순간

     

    그의 말이 다시 들렸다

     

     

    온 지 좀 됐는데

     

    종로 뒷골목 술집이 그립다

     

    여기서 살까 왔는데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그리고 말이야

     

    저 번에 갔던 그 집 매운탕…

     

     

    눈보라가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바지춤 내려 흔들어 포물선 그어

    시원하게 오줌 줄기 뿌리고는

     

    통쾌한 마음에 풀썩 큰 대자로 누웠다

     

    쉼 없이 쏟아 뿌려대는 하늘이 위대했다

     

     

    흰 숲에서 들리는 꼼지락거리는 소리

     

    눈동자 맑고 검은 고라니 한 마리

     

    뒤뚱거리며 지나갔다

     

     

    그의 말이 다시 들렸다

     

     

    밤이 무서워 아니 싫어

     

    겨울바람이 짜증나

     

     

    그는 외로움을 하소연하는데

     

    들은 척 만 척

     

    난 이미 스마트폰*RF를 타고 거기 가 있다

     

    점으로 다가온 황조롱이 한 마리가

     

    무언가 입에 물고 숲으로 사라졌다

     

     

    이후 그가 뭐라 했는지는

     

    쌓인 눈에 덮여 안중에도 없었다

     

     

     

    *RF : radio frequency 무선주파수

     

     

    (박산 시집 '무야의 푸른 샛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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