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詩를 읽는다

박산 2025. 6. 1. 07:36

 

를 읽는다 -

 

사치에 더해 외모 지상주의에 함몰되고, 첨단의 IT 기기를 지치도록 따라다니며, 밥 한 그릇 먹으러 가는 식당에서까지 AI가 상용화되는 이런 시대에, 아름다운 언어를 핑계로 순수 지향을 내세워, 시를 읽는다는 사실 자체가 별종 취급을 받을 수 있다.

 

시를 쓴다는 거 또한 누군가를 대할 때 민망해질 수 있다

 

나 역시 2008년 첫 시집 노량진 극장을 냈을 때, 산업단지 상공인들 모임에서 잘 지냈던 몇몇 사업가들에게서 그런 눈초리를 느꼈었다. ‘ 어 저 사람 뭐야? ? , , ! 백수 다 됐구만!’, 조금 이물 없이 지내는 분들은 인사치레 봉투를 넣어주면서 넌지시 박 사장! 축하해! 자유를 찾아서, 부럽네!” 진실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말을 건넸었다.

 

나는 스무 해 넘어 아직 시를 쓰고 읽는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진솔하게 쓰인 멋진 문장의 시들을 찾아 읽고 싶고 내가 쓴 시로 독자와 소통하고 싶다. 시가 싸구려라 해도 좋고 시대에 뒤떨어진 루저들의 취미라 해도, 나이 든 은퇴자들의 소일거리라 비난받아도 상관없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한국을 대표한다거나 어디 가서 문학단체의 일원으로 대접받는 일은 싫다. 주위 간혹 목격하는, 내 시 알려달라 구걸하는 시인들은 더욱 안쓰럽다. 그냥 있는 그대로 지금처럼 주위 응원해 주시는 몇 분의 독자들과 가까운 지인들로 만족한다.

 

팔순 노인도 유튜브 보는 일로 날을 보내고 젊은이들은 SNS, 전 세계가 비밀 없이 발랑 까진 이 세상에, 시는 思考의 바다에서 침묵과 명상으로 진화하다가 탄생한 속세의 그 많은 생산품 중에 그나마 가장 덜 상품화한 문자 化石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거기에는 가장 아름답다는 인간의 사랑도 그려져 있고 읽을수록 애틋한 비밀의 화원도 엿볼 수 있고, 삶의 고통스러운 여정 또한 새겨져 있다.

 

오늘도 나는 내 마음속 창가에 항시 꽃 한 송이 키우며 물을 주고 있다.

 

시 읽고 쓰는 일도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흔히 염세주의자 비관주의자라 표현되는 쇼펜하우어 어록 중에 고난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로 살아갈 수 없다 나는 이 말에서 염세나 비관이 아니라 삶에 대한 도전 의식을 느끼게 한다, 시 역시 팔자 좋게 산해진미를 먹으며 쓰는 게 결코 아니다.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 금지된 과일은 독특한 맛을 가졌네(Forbidden Fruit a flavour has that lawful Orchards Mocks)의 문장, ‘규범이 잠가 둔 꼬투리 속의 완두콩은 얼마나 맛있는가!/How luscious lies within the Pod the The Pea that Duty locks)’.

금지된 과일은 특별한 맛을 가졌네/잘 가꾸어진 전통의 과수원이 조롱하는/규범이 잠가 둔 꼬투리 속의/완두콩은 얼마나 맛있는가!

 

몰래 따먹는 과일은 물론 더 맛있다, 마치 인간의 연애사처럼.

 

나는, 이런 시를 쓰고 싶다.

 

오늘도 나는 시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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