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여의도에서 엎드려뻗쳐! -
때는 수양버들이 강가에 늘어졌던 1960대 초
지금의 노량진 수산시장 자리 장택상 별장과 여의도 비행장 사이에는 샛강이 흘렀지
그 샛강에 땡볕 내리쬐는 날에는 어린 초등학생들도 군데군데 마른 땅 찾아 요리조리 발목이 물에 살짝 빠지면서 건너다닐 정도였지
국영이 유신이하고 또 누구였던가 이름이 가물가물한 애들 너댓이 지금의 63빌딩 근처 땅콩 서리를 위해 샛강을 건넜지
근데 말이야… 땅콩밭에 가기도 전에 경비 서던 공군 헌병에게 발각됐어, 지루하던 차에 장난감들이 스스로 찾아왔으니 얼마나 즐거웠겠어
일단 우리는 그의 명령에 따라 엎드려뻗쳤지
주소와 부모님 뭐 하시나? 로 호구 조사를 당했지만 실제 핵심은 어느 녀석이 예쁜 누나가 있느냐였어
순진한 국영이와 유신이는 누나가 없다 했지만
잽싸게 있다고 말한 나는 순식간에 엎드려뻗쳐에서 “무릎 꿇어!”로 신분 상승했지
어디 그것뿐인가, 군용 건빵에 빨간 별사탕 몇 개가 내 입에만 들어갔었지
옛날 옛적 여의도에서 그랬다는 얘기야
* 시집 《가엾은 영감태기》중
添)
이즘도 자주 변모한 여의도를 갑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덩치만 산만한 국회의사당을 빼고는
명실공히 서울의 맨해튼 '여의도', 은행 증권 회사들이 즐비하고
우리 경제를 짊어진 한국의 금융인들이 열심히 일하는 곳.
여의나루역 2번 출구 계단을 내려가 강변을 걷습니다.
아직도 샛강의 흔적을 더듬어 찾기도 하고
그 시절 내가 밟았던 모래톱의 기억을
강가 시멘트에 붙어 흙으로 남은 모래 찾아 밟아 보기도 하고.
한강은 여전히 유유히 흐르고 강둑에 생존한 미루나무 몇 그루는 반기지만
때로는 혼자 걷기가 번거로울 정도로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걸을 때마다 강변 피자집은 언제 가보지?
그 옆 통닭집, 언제 한 번 먹어보지?
사실 회사원들이 노천 의자에 앉아 맛있게 먹는 모습에 끌려
매점 즉석 라면은 두 번 먹어 보았습니다.
그 시절 서리로 맛보았던 비릿한 땅콩 맛과
퍽퍽한 밀가루 맛이 진했던 군용 건빵 맛은
아주 까맣게 잊은 채로.
지난주에도, 나로 인해 한강 산책에 맛 들인 J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여의나루역 2번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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