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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돌담에 기대어 ㅡ

박산 2019. 12. 9. 10:18





덕수궁 돌담에 기대어 ㅡ


어둔 밤

도심 한복판 너른 광장 옆

패망한 왕조의 복구된 돌담

거리 조명이 연출한 영화에 기댔습니다


권문세도의 말발굽에 파였던 길을

무심한 듯 불 켠 자동차들은

까맣게 잊힌 아픈 역사를 밟으며

줄지어 제 갈 길을 갑니다


시원찮은 인간 하나가

화강암 돌담 손바닥으로 쓰다듬는데

뭔지 모를 동변상련이 일어

잊힌 연정의 손길을 잡은 듯

다정이 무한해집니다


산다는 게 과거를 버리는 연습일지라도

청춘의 권좌에서 내려오는 길에 만난

깜빡이는 촛불 같은 기억 하나

행여 꺼질까

품어 감싸고 또 감싸는 중입니다


크고 작은 소음들과

크고 작은 불빛들이

웃고 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