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돌담에 기대어 ㅡ
어둔 밤
도심 한복판 너른 광장 옆
패망한 왕조의 복구된 돌담
거리 조명이 연출한 영화에 기댔습니다
권문세도의 말발굽에 파였던 길을
무심한 듯 불 켠 자동차들은
까맣게 잊힌 아픈 역사를 밟으며
줄지어 제 갈 길을 갑니다
시원찮은 인간 하나가
화강암 돌담 손바닥으로 쓰다듬는데
뭔지 모를 동변상련이 일어
잊힌 연정의 손길을 잡은 듯
다정이 무한해집니다
산다는 게 과거를 버리는 연습일지라도
청춘의 권좌에서 내려오는 길에 만난
깜빡이는 촛불 같은 기억 하나
행여 꺼질까
품어 감싸고 또 감싸는 중입니다
크고 작은 소음들과
크고 작은 불빛들이
웃고 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