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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사자

박산 2019. 7. 15. 10:28





땅을 사자 -


딴 거 없다

우리 주특기인 땅을 사는 거다


누군가를 때리고 침략이라곤 해 본적도 없던 민족이 

갑자기 무기 만들어 남의 나라 쳐들어 갈 수도 없는 세상이고 

우리네는 사실 쪽수가 너무 적으니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 한다


그 동안의 핑계는 좋다

듣기 좋게 자위 하는 말이 

우리는 남 해코지하지 않는 민족이라고

그거 다 개털이다


민족주의 노동운동 민주주의

이제 그만하면 됐다


당최 시끄러워 못 살겠다

내가 못 사는 건 내 탓이다

민족 탓도 그 잘난 민주주의 탓도

빨간 띠 둘러 벌이는 노동운동 탓도 아니다 


내 새끼 내 후손들

나 죽어도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갇혀 죽지 않도록

땅 사는 운동을 하자


인구 5000만이 세계에서 장사 10등 했다 

잘했다

그러나 더 잘 할 수 있다 

장사 좀 더해서 5등’ 안에만 들자 

그리고 땅을 사자


태평양에 사람도 몇 안 살고

전쟁 없는 공기 좋은 섬 스무 개만 사자

마셜제도에 있는 섬 모두 다 사버리고

나우루도 사 버리고 투발루도 사 버리고

솔로몬 섬도 다 사 버리고

내친김에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州)도 사버리자 

미국대통령이 안 된다면

건물도 목장도 공장도 집도

우리 대한민국 사람이 왕창 사버리면 된다 


우리 후손들 여권도 필요 없이

여기저기 확장된 내 나라에서 

공부하고 농사짓고 고기 잡고 사무실 내고

또 돈 벌어 부자 되어서

계속해서 또 땅 사게 만들자


그 때 즈음이면

국제 땅장사에 아마 도(道)가 트였을 거다 

왜냐하면

땅장사에는 대대로 이력이 난 민족의 후손 아닌가


국호도 바꾸어버리자

‘대한민국 월드부동산 주식회사’

미국도 우리 통해 땅을 사고

일본도 우리 통해 땅을 사고

중국도 우리 통해 땅을 사고


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땅을 사자 왕창 사자



(박산 시집 ‘노량진 극장’ 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