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Photo by C.Park
정情이란 죽일 놈
한 여자와 변치 않고 산다는 것
그거 참 지루한 일이다
한 남자와 죽자 사자 산다는 것
그것도 참 지루한 일이다
지지고 볶다 튀겨질 무렵에야
겨우 인심 좋은 '정'이란 죽일 놈이
슬며시 음흉한 뱀 똬리 틀려는 듯 기어들었다
이도 저도 못하게 뻐걱 소리 나게
말라 비틀어져 헉헉거리던 숨소리조차
거세된 사랑이란 초라해진 미물을
아예 내쫓아 버렸다
굳이 애쓸 것 없는 비음鼻音을 생략 한 채로
그냥 '정' 이란
그럴싸한 핑계를 대고 말이다
(박산 시집 ‘노량진 극장’ 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