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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승대 기행

박산 2019. 6. 17. 10:40

 

 

 

 

수승대 기행搜勝臺 紀行


 평생을 서울 언저리나 기웃대던 사람이 
 거창 수승대 마당바위에 벌렁 누웠더니 
 구름이 느린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모가지 긴 거북바위는 
 내달리는 물소리에도 무심하다 

 愼아무개 曺아무개 외 여럿의 
 공명을 추구했던 옛 이름들이 
 이 바위에 저 바위에 
 세월의 때로 끼어 박혀있다 

 물 건너 樂水亭 숲 의자에 앉았다 
 붉고 굵은 등 굽은 소나무들이 
 성령산 골짜기 실바람 불러 
 소곤소곤 내 귀에 들려주는 
 퇴계의 '命名詩'를 듣다가 
 . 
 . 
 . 
 . 
 나의 눈 수승대로 자꾸만 쏠려 
 未寓搜尋眼 
 수승을 그리는 마음 더욱 간절하다 
 惟增想像懷 
 언젠가 한 동이 술을 가지고 
 他年一樽酒 
 수승의 절경을 만끽하리라 
 巨筆寫雲崖 

 이 마지막 구절을 따라 읊조리다 
 나도 한 동이 술을 벌컥벌컥 마시며 
 가슴속 깊이 박혀 아픔으로 남아 있는 
 미워하는 사람 하나 울컥 토해 내어 
 저 물살 센 냇물에 흘려보내고 싶다

(2019 初夏 거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