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승대 기행搜勝臺 紀行 -
평생을 서울 언저리나 기웃대던 사람이
거창 수승대 마당바위에 벌렁 누웠더니
구름이 느린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모가지 긴 거북바위는
내달리는 물소리에도 무심하다
愼아무개 曺아무개 외 여럿의
공명을 추구했던 옛 이름들이
이 바위에 저 바위에
세월의 때로 끼어 박혀있다
물 건너 樂水亭 숲 의자에 앉았다
붉고 굵은 등 굽은 소나무들이
성령산 골짜기 실바람 불러
소곤소곤 내 귀에 들려주는
퇴계의 '命名詩'를 듣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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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 수승대로 자꾸만 쏠려
未寓搜尋眼
수승을 그리는 마음 더욱 간절하다
惟增想像懷
언젠가 한 동이 술을 가지고
他年一樽酒
수승의 절경을 만끽하리라
巨筆寫雲崖
이 마지막 구절을 따라 읊조리다
나도 한 동이 술을 벌컥벌컥 마시며
가슴속 깊이 박혀 아픔으로 남아 있는
미워하는 사람 하나 울컥 토해 내어
저 물살 센 냇물에 흘려보내고 싶다
(2019 初夏 거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