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그 네거티브negative -
가을은 기척 없이 뒤에서
내 눈을 가리고
"누구 게?"
하고 나타난
바바리코트 입은 연인
얌전한 척 소리 죽이고 있지만
밤 별들로 냉각된 은하수는
음흉한 그 속내를 다 알고 있다
그가 부리는 머슴 중에는
소슬바람이 능청스럽고
새벽 잎사귀 위 이슬은 새치름할 뿐이지만
강가 한 모퉁이
더위 한풀 꺽인 풀숲에
젊잖게 들어앉은
그들의 상전 가을은 '있는 척' 이 없다
초저녁 서녘 노을
태양을 죽이고
하늘에 붉은 칠을 할 때면
그제야 슬며시 기어 나와
잠시 후에 올
자신 만의 세상을 생각하고는
만족스런 기지개를 켤 뿐
한참을 지나
다시 다가 온 어둠과
수다스런 오랜 대화 끝에
기다리고 있던 달과 악수하고
달리고 비껴가고 스쳐가고 떨어지는
그 수많은 반짝이는 별들 속으로 들어갔다
가슴 속 나귀 한 마리 있어
목에 건 그 방울소리가 커짐도
밤 숲 속 부엉이
울음소리 떨림판이 점점 더 굵어지는 것도
표주박 하나 가득 퍼먹던 작은 샘이 있어
그 물에 이가 시리는 것도
울 아줌니 품 떠난 지 석 삼 년이 지난
임이
새삼스레 그리운 까닭도
달빛 창가 편지 쓰다
괜스레 흐르는 눈물도
손아귀에 안겨있는 술잔을
비우기보다는
바라보는 것이 더 좋은 이유도
우리 마나님 엉덩이 살집이
잡히지도 않는 이유도
모두가 다
음습하고 속내가 시끄런
가을 너 때문이다
(박산 시집 '구박받는 삼식이' 2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