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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그 네거티브negative -

박산 2018. 9. 14. 10:57




가을, 그 네거티브negative - 


 가을은 기척 없이 뒤에서 
 내 눈을 가리고 
 "누구 게?" 하고 나타난 
 바바리코트 입은 연인 

 얌전한 척 소리 죽이고 있지만 
 밤 별들로 냉각된 은하수는 
 음흉한 그 속내를 다 알고 있다

 그가 부리는 머슴 중에는 
 소슬바람이 능청스럽고 
 새벽 잎사귀 위 이슬은 새치름할 뿐이지만 

 강가 한 모퉁이 
 더위 한풀 꺽인 풀숲에 
 젊잖게 들어앉은 
 그들의 상전 가을은 '있는 척' 이 없다

 초저녁 서녘 노을 
 태양을 죽이고 
 하늘에 붉은 칠을 할 때면 
 그제야 슬며시 기어 나와 
 잠시 후에 올 자신 만의 세상을 생각하고는 
 만족스런 기지개를 켤 뿐 

 한참을 지나 다시 다가 온 어둠과 
 수다스런 오랜 대화 끝에 기다리고 있던 달과 악수하고 
 달리고 비껴가고 스쳐가고 떨어지는 
 그 수많은 반짝이는 별들 속으로 들어갔다  

 
 가슴 속 나귀 한 마리 있어 
 목에 건 그 방울소리가 커짐도 
 밤 숲 속 부엉이 
 울음소리 떨림판이 점점 더 굵어지는 것도 
 표주박 하나 가득 퍼먹던 작은 샘이 있어 
 그 물에 이가 시리는 것도 

 울 아줌니 품 떠난 지 석 삼 년이 지난  
 임이 새삼스레 그리운 까닭도 
 달빛 창가 편지 쓰다 괜스레 흐르는 눈물도 
 손아귀에 안겨있는 술잔을 비우기보다는 
 바라보는 것이 더 좋은 이유도 
 우리 마나님 엉덩이 살집이 잡히지도 않는 이유도

 모두가 다 
 음습하고 속내가 시끄런 
 가을 너 때문이다

 (박산 시집 '구박받는 삼식이' 2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