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숙이 누나 -
1963년
서울
한강다리
노량진역 앞
야트막한 산동네
6.25 때 엄청난 폭격으로
나무 한 그루조차 살지 못해 붙여진 이름 대머리산
그 언덕배기 성황당 고개 넘는 길 푹 파인 골짜기
녹슨 양철 지붕 집에 세 들어 사는
금숙이 누나는 양공주였다
난 그때 양공주가 무언지 잘 몰랐다
그냥 공주는 다 예쁘려니 했다
종종 키가 이 만큼 큰
용산 미군부대 사는
흑인 엠피가 집에 왔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비는
항시 술에 취해
소리소리 지르고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넷 인지 다섯인지 모를 그녀의 동생들은
씨레이션 깡통 속
닭고기 몇 점과 허쉬 초콜릿에
입이 충만하여 그 움직임이 바빴다
금숙이 누나 동생 내 친구 코흘리개 호태는
씹어도 씹어도 질리지 않는
미제 껌 하나 남겼다가
딱지 구슬 부자였던 내게 줬다
금숙이 누나는 미군 따라 미국에 갔고
그 집 남매들도 줄줄이사탕으로 미국에 갔다
사십 년이 훨씬 넘은 세월은
바람을 타고 흔적 없이 지나갔지만
그 집 소식은
비행기 타고 온 누군가에 의해 내 귀로 전해졌다
금숙이 누나는 그 미군과 이혼한 지 오래고
동생들 몽땅 데리고
그로서리(Grocery:식료품점) 운영하며 살았다 하고
지금은 미 동부 어딘가에서 손주 재롱 보아가며
평화로운 노후를 보낸다 하고
아쉽게도
내 친구 호태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교수도 의사도 되고 사업도 하고
성공한 이민생활을 하고 있다니
불현듯 그 때 호태에게
딱지도 많이 주고 구슬도 좀 더 줄 걸 후회스럽다
금숙이 누나는
결국 온 집안 식구의 등불이었다
웃지도 울지도 않았던 금숙이 누나의 얼굴에 박힌 1963년은
내 기억 속의 빛바랜 등불로 깜박이고 있다
난 아직도 한강다리 노량진역을 배회하고 있다
(박산 시집 '노량진 극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