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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도두봉

박산 2017. 4. 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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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from 제주여행사진

 

새벽 도두봉 ㅡ

 

제주시 바닷가 이호 도두동네

한라산이 깔아 놓은 어둠을 핑계로

철썩철썩 파도 소리 안주 삼아

새벽까지 소주 몇 병이 비워졌다

 

저만치 보이는 작고 빨간 등대가

어린아이 잠지 같다

 

"새벽 도두봉 5분만 올라 보세요"

 

술상이 치워질 즈음

제주 거주 작곡가 노명희씨가

나붓나붓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명이 빨리 올까 조바심으로

날카로워진 자동차 시동 소리를

검은 바다는 무덤덤하게 삼켰다

 

절집 스쳐 오르는 길 양옆 무덤들은

풀 죽은 4월의 붉은 동백들과 이별 중이다

 

짧은 무덤 행렬 끝에 나타난

백여 평 평탄한 풀밭 도두봉은

뻥 뚫린 태평양을 마주 보면서

빗자루도 없이 어둠을 쓸어내고 있다

 

옛 봉수대 위로 여명이 비추기 시작하자

나는 오랫동안 목에 걸려 있던 근심들을 쏟아냈다

 

통쾌한 짜릿함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지배했다

코끝으로 맑은 기운이 들어오고

몸은 깃털 같이 작고 가벼워졌다

 

티끌 하나 되어 태평양을 날았다

 

먼 바다의 붉고 푸른 기운이 다가와 날 휘감았다

절정의 외마디가 튀어나왔다 아!

 

돌아와 도심의 일상에 허우적대던 어느 날

문득 잠지 같은 빨간 등대와

풀 죽은 붉은 동백들이 떠오르고

신비롭게 날았던 새벽 도두봉

붉고 푸른 태평양이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