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情이란 죽일 놈

박산 2021. 3. 15. 11:26

                                                 「 Boredom」 조남현 화가

 

 

《박산 시집 노량진 극장’ 86쪽≫

 

 

「정이란 죽일 놈」

 

한 여자와 변치 않고 산다는 것

그거 참 지루한 일이다

 

한 남자와 죽자 사자 산다는 것

그것도 참 지루한 일이다

 

지지고 볶다 튀겨질 무렵에야

겨우 인심 좋은 정이란 죽일 놈이

슬며시 음흉한 뱀 똬리 틀려는 듯 기어들었다

 

이도 저도 못하게 뻐걱 소리 나게 말라 비틀어져

헉헉거리던 숨소리조차 거세된

사랑이란 초라해진 미물을

아예 내쫓아 버렸다

 

굳이 애쓸 것 없는 비음鼻音을 생략 한 채로

그냥 '' 이란 그럴싸한 핑계를 대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