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임이여 어딜 다녀오셨나요
박산
2019. 3. 11. 10:17
산수유(사진 우영석)
임이여 어딜 다녀오셨나요 -
다녀오신 길 어딘지 몰라도
꽃길 십리
물길 백리
산길 수만리 비행하고도
녹녹한 손길로
끈끈하게 밤새 품어주신 그 사랑은
꿈꾸는 밤하늘이 되어
유난히 별이 반짝였고
구름은 쿠션 좋은
달콤한 솜사탕 덩이었지요
햇살 고운 아침
베란다 걸린 빨래 틈으로
잔뜩 배부른 까치 한 마리 사선 긋고 날다
마주친 내 눈 바라보고 싱긋이 웃고는
가던 길을 날아갑니다
임이여 어딜 다녀오셨나요
삼 계절 모두 물리치고는
오로지 봄만 가득 찬
백송이 붉은 장미가 나를 위해 춤을 추고
오백송이 노랑제비꽃이 나를 위해 도열해 있는
갓 구워 낸 피자위의 ‘치즈댄스’ 같은
그런 화원이었을 거라 짐작은 합니다
임이여 어딜 다녀오셨나요
묻지 않아도 되는 건 사랑입니다
보지 않아도 아는 건 사랑입니다
촉감이 좋아도 그건 사랑입니다
혀끝이 부드러운 구슬을 굴리면
그것 역시 사랑입니다
달빛만 그냥 보듬어 품고 있어도
임이 주시는 사랑 저리게 파고듭니다
(박산 시집 '노량진 극장' (2008) 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