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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단이에게 껄떡 대다 귀싸대기 맞은 방자 꼴 났다 -

박산 2018. 10. 1. 11:37


선운사 꽃무릇

                                                                 

 

향단이에게 껄떡 대다 귀싸대기 맞은 방자 꼴 났다 - 

 

 조막만한 몸도 덩치라고 
 어깨 벌려 걷는 팔자걸음이나마 제멋에 취하고 
 내가 왕년에로 시작하면.... 
 유도했다 태권도 유단자다 산에 가면 날다람쥐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간에 이 허세 달고 사는 기분도 괜찮은데 
 예순 넘어 그가 아쉬운 건 딱 하나 외롭다는 거다 

 

 의리 상실하고 5년 전 먼저 소풍 떠난 마누라가 밉다 
 하나 있는 딸년을 작년에 여의고 나니 
 집에서 밥 해 먹는 일도 궁상맞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문화센터 스포츠댄스 배우러 갔다가 
 반년 만에 교양 만점 배 여사를 만났다 
 붉고 짙게 바르는 화장이 아니어서 좋고 
 꽉 끼는 바지 대신 치마를 입으니 보기에 여유로워 좋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함께 마셔서 좋고 
 톡 까놓고 통성명은 안 했지만 
 얼핏 맞춰 보니 나 보다 한 살 어려 
 또래인 것도 좋고 
 무엇보다 혼자 산다니 
 이 홀아비 마음 과부가 어련히 알까 
 그게 최고로 좋았다 

 

 만난 지 석 달이 지났다 
 밥도 먹고 공원도 갔었고 영화도 구경하고 
 수다스럽지는 않았지만 
 얘기도 그럭저럭 많이 나눴다 

 

 헤어질 때면 그놈의 체면이 무언지 
 아직 남은 힘이 뭉쳐지면서 
 더 큰 외로움을 외롭다 말하지 못했다 

 

 이 참에 아예 합칠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입가에 미소가 돌았고 
 배 여사와 배를 맞추는 일까지 상상하니 
 이 나이에도 이부자리 설렘이 크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넌지시 뜻을 전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여생을 함께 하는 게 어떻겠냐고 
 시간이 필요하면 제주도라도 가서 생각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싫다” 소리 없이 웃으며 헤어졌는데 
 다음 날부터 문자 소통이 일방 끊어졌다 

 

 열흘 후 배 여사의 눈이 째진 며느리가 찾아왔다 

 

 - 선생님, 순진한 우리 어머니께 그러시면 안 되지요 
 혼인신고도 안 하시고 함께 사시자니요 
 참 어처구니가 없네요 
 품위 있어 보이시는 분이 
 우리 어머니를 어찌 그리 만만히 보시는 거예요 
 함께 사시고 싶으시면 정식 절차를 밟으세요 
 (어린아이 타이르는 어조의 그녀의 말은 계속 됐다 - 중략) 

 

 - (화도 나고 쪽도 팔리고.... 하고 싶은 말이야 많았지만 조용히 일어나 커피 값 내고 그냥 나왔다) 

 

 생각해 보니 향단이에게 껄떡 대다 귀싸대기 맞은 방자 꼴 났다
 "쑥대머리 귀신 형용...." 
 이몽룡이도 못 된 중뿔난 방자 신세가 더 서럽다